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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시점
2017년 9월 28일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단 하나다.프레드릭과 결혼한 것.
그래, 이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결혼이었다.
할머니의 강요로 이루어진 정략결혼, 차가운 남편, 사랑받지 못하는 아내 같은 이야기는 영화 속에나 존재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일을 겪게 된 건 바로 나였다.
한 달 전의 결혼식을 없던 일로 돌릴 수만 있다면, 지금처럼 끔찍하지는 않았을 텐데.
“내 침대에서 뭐 하는 거야? 당장 나가.”
나는 오른쪽을 돌아보았다.
왼쪽 가슴에 오래된 흉터가 있는 키 큰 남자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그 남자는 내 남편, 프레드릭 리암 스미스였다.
그가 저런 태도를 보이는데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나는 곧바로 그의 곁에서 물러났다.우리 사이에는 애정도, 키스도, 행복의 흔적도 없었다.
그가 내게 다정한 척을 하는 순간은 오직 할머니 로사 앞에 있을 때뿐이었다.로사는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진심으로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따뜻한 배려를 나는 늘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 더욱 큰 빚을 진 기분이었다.“프레드릭 씨, 내일 일정 말인데요—”
“조용히 해. 내 스케줄 정도는 내가 알아. 왜 네가 그런 걸 말하는데? 언제부터 네가 내 비서였지? 설마 날 감시하는 거야?”
봐라.
나는 아직 말도 끝내지 못했는데 프레드릭은 곧바로 짜증부터 냈다.참고로 나는 그를 자기야나 여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항상 “프레드릭 씨”라고만 불렀다.“죄송해요, 프레드릭 씨.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다만 비서분이 연락이 안 된다고 해서요. 급한 미팅이라고 했어요.”
프레드릭은 날 노려보더니 탁자 위에 있던 휴대폰을 거칠게 집어 들었다.
“다음부터는 핵심만 말해. 휴대폰 켜라고만 하면 되잖아. 괜히 내 일에 간섭하거나 스케줄 관리하려 들지 마. 알겠어?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마. 난 하루 종일 이 빌어먹을 결혼생활에서 행복한 척하느라 피곤하니까.”
나는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탓해야 한다면, 그건 로사와 나 자신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로사는 내 미래를 걱정했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이 가족을 알고 지냈다.내 아버지 고일은 로사의 운전기사였다.
거의 20년 가까이 그녀를 위해 일했다.아버지가 얼마나 충성스러운 사람이었는지, 또 어린 시절 나를 데리고 로사의 정원에서 놀아주던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갑자기 가슴 한구석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잘 지내고 계실까.
어머니와 다시 만나셨을까.그때 프레드릭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며 내 생각을 끊어놓았다.
그는 곧바로 몸을 일으켰고, 화면을 보자 환하게 웃었다.“베이비, 네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어. 어디야?”
내게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누가 전화했는지 궁금한가?
말해주겠다.
유명 모델 폴라였다.물론 폴라는 프레드릭의 연인이었다.
고작 결혼 한 달 만에 어떻게 모든 게 이렇게 망가질 수 있냐고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프레드릭은 결혼식 당일, 이미 모든 걸 분명하게 말했으니까.
“빨리 준비해. 가자.”
프레드릭은 다급한 얼굴로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나는 아직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 늦은 밤에 대체 어디를 가려는 걸까.“야, 뭐 해?! 못 들었어?!”
프레드릭은 욕실 문을 세게 두드리며 소리쳤다.
나는 서둘러 일어나 옷장을 열었다.
흰색 스웨터와 검은 바지. 가장 무난한 선택이었다.욕실에서 나온 프레드릭은 날 보자마자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굼뜨고 쓸모없네. 아직도 이해가 안 가. 왜 할머니가 널 그렇게 아끼면서 나랑 결혼까지 시켰는지. 너한테 대체 무슨 가치가 있다는 거야? 예쁜 것도 아니고 냄새까지 이상해. 하… 너랑 같은 침대를 쓰는 것만으로도 역겨워, 마틸다.”
다리가 떨렸다.
그의 말은 뜨겁게 살을 베어내듯 깊이 박혔다.
하지만 나는 울음을 삼킨 채 곧장 욕실로 향할 뿐이었다.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그와 싸우기라도 해야 했을까.나는 로사와 아버지에게 약속했다.
이 결혼을 끝까지 견디겠다고.언젠가는 모든 게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희망 하나만 붙잡고 있었다.
그래, 나는 아직도 프레드릭이 언젠가 날 다르게 바라봐 주길 바라고 있었다.
나는 아름답지 않을지 몰라도, 적어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
“언제까지 꾸물거릴 거야?! 잘 차려입는다고 내가 널 좋아하게 될 것 같아? 그 스웨터 입어도 촌스럽고 못생긴 건 똑같거든.”
차에 타자마자 들려온 건 또다시 모욕적인 말뿐이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안전벨트를 맸다.
프레드릭은 몸을 약간 내 쪽으로 기울이며 공기를 맡았다.
또 뭐가 문제인 걸까.
정말 내가 그렇게 냄새가 심한 걸까.“윽, 냄새 진짜 별로야. 이틀 전에 생활비 줬잖아. 왜 향수 안 샀어?”
“향수 뿌렸어요, 프레드릭 씨. 제가 살 수 있는 건 그게 전부라서요… 죄송하지만 그렇게 심한 냄새는 아닌 것 같아요.”
“네 싸구려 향수 냄새는 내 코에도 안 닿아. 네가 지금 누구와 사는지 좀 자각해. 내 사랑은 절대 못 받겠지만 넌 내 아내야, 멍청아. 앞으로 중요한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될 거고, 할머니도 널 행사에 데리고 다니실 거다. 눈 좀 높이고 명품 향수 정도는 써. 우리 집안 망신시키지 말고.”
그 순간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프레드릭의 시선은 곧바로 휴대폰으로 향했다.
기어 옆 화면에는 ‘Paula’라는 이름이 밝게 떠 있었다.그제야 어디로 가는지 알 것 같았다.
당연히 폴라를 만나러 가는 거였다.
프레드릭은 즉시 전화를 받았다.
“응, 베이비. 지금 가고 있어. 기다려.”
그 말을 끝으로 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정이 훌쩍 지난 밤,
적막 속에서는 라디오 소리만 희미하게 흘러나왔다.모든 여자들의 꿈 같은 화려한 대저택이 백미러 너머로 점점 멀어졌다.
나는 프레드릭을 바라보았다.
숨이 막힐 만큼 잘생긴 얼굴.
도대체 나는 무슨 꿈을 꾸고 있었던 걸까.
오랫동안 동경해 온 남자와 같은 차 안에 앉아 있으면서도,
내 마음은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아…
이 모든 게 사랑으로 시작된 일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